전략 전공의 윤우진 교수님과
김상지(삼성경제연구소 산업전략1실 수석연구원), 한경수(전략경영학과 석사 졸업) 학우님의
'각인 효과와 신생기업의 생존: 창업 초기 최고경영진의 특성이 벤처기업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
논문이 중앙일보 2017년 7월 16일 기사에 소개되었습니다.
http://mnews.joins.com/article/21760658#home
벤처기업 CEO의 생존 역량을 어떻게 벤치마킹할까
“한국 게임업체의 제품은 스토리와 프로그램은 좋은 데… 글로벌화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몇 해 전 핀란드 로비오(Rovio) 본사에서 만난 유하니 혼칼라(Juhani Honkala) 부사장이 했던 말이다. 로비오는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게임업체다. 노키아가 속절없이 무너진 뒤 등장해 핀란드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상징이다. 그의 말은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자국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먹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로비오 부사장으로 옮기기 전까지 한국 게임업체에서 일했다. 그의 아내도 한국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정보통신(IT) 기업 현황을 낱낱이 꿰고 있었다. 혼칼라 부사장은 “이제는 세계 시장을 겨냥하지 않으면 초기에 성공하더라도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지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6)
지금이야 전세계가 인정하는 게임업체지만 로비오도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로비오가 설립된 건 2003년이다. 혼칼라 부사장은 “2009년까지 51개 아이템을 시장에 내놨는데 모두 외면받았다”고 말했다. 파산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52번째 아이템이 앵그리버드였고, 이게 대박을 쳤다. 그는 그 과정을 “유쾌한 실패(Funny Failure)”라고 했다. 유쾌한 실패로 모닥불(핀란드어로 Rovio)을 피워올려 전세계를 매료시킨 셈이다.
벤처에서 시작해 글로벌 업체로 성장한 기업은 로비오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다. KFC를 창업한 커널 센더스(본명: Harland David Sanders)는 1008번이나 퇴짜를 맞은 끝에 1009번째에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영국의 가전업체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5126번의 실패를 겪고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 세계 시장을 휘어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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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나이 어릴수록 기업 생존률 높아
이러던 차에 의미있는 연구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국인사관리학회(학회장 박호환 아주대 경영대학장)가 최근 발간한 「조직과 인사관리 연구」라는 학술지의 프런트 논문이다. ‘각인효과와 신생기업의 생존: 창업 초기 최고경영진의 특성이 벤처기업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이 붙었다. 김상지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전략1실 수석연구원, 한경수 한양대 대학원 전략경영학과 석사, 윤우진 한양대 ERICA캠퍼스 경영학부 부교수가 썼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나이, 기술 역량, 국제경험이 기업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봤다. 그동안의 연구가 초기 자본규모나 투자, 재벌의 계열기업으로서 지닐 수 있는 잠재적 장점에 기초했다면 이 연구는 철저히 CEO의 특성만 팠다. 연구 결과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CEO의 나이가 어릴수록 생존률이 높았다. 35세 이하에선 생존률이 92.1%에 달했다. 45세 이하는 73.8%, 46세 이상은 68.8%였다. 이는 그만큼 기발한 발상을 하고, 그게 시장을 매료시킨다는 얘기 아닐까. 역으로 나이가 들수록 예전의 사고방식에 갇혀 혁신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CEO가 높은 학습능력과 그들이 습득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새로운 정보 역시(생존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기업의 CEO가 젊은 근로자와 소통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 이유를 던졌다고 하겠다. 기술 역량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자본의 규모가 크지 않고 창립자의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최고경영진의 기술 역량은 조직의 루틴에 각인돼 조직의 장기생존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단순히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CEO가 체득한 기술적 뒷받침이 있어야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비창업자뿐 아니라 기업 경영자가 새겨야 할 부분이다.
CEO가 가진 국제경험역량이 생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선 이번 연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해외 경험이 있는 단순 합에 의존해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학위취득 여부, 관련업무 종사여부와 같은 질적인 면을 고려해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보완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경험 역량이 신생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많다. 경영진의 해외 근무나 유학과 같은 국제경험 역량은 해외 시장에서의 기회를 더 쉽게 포착하게 해 준다. 해외 진출에도 성과를 낸다. 연구자들은 “규모가 작은 틈새시장 등을 공략해 창업하는 벤처기업에게는 해외 시장의 기회를 빠르게 포착해 시장을 넒히는 것이 성장과 장기적인 생존에 더욱 중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제경험 역량은 유·무형적 자원이 혼합된 형태로써 쉽게 모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략적 우위는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봤다. 어쩌면 로비오사의 혼칼라 부사장이 한국 게임업체에서 업무 경험을 쌓은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연구는 벤처에 대한 연구였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으면 기존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존 기업의 CEO도 기술 역량과 해외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 다만, 나이를 낮추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역으로 벤처, 신생, 젊음이란 용어와 이들을 지탱하는 힘, 역량을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건 어떨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광기를 허하라”고 했다. 젊은이의 발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 아닐까. 아이디어는 관료화된 곳에선 탄생하기 힘들다. 기술을 습득하고, 그걸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젊은 층은 빠르다. 그런 기발함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세상이다. 때론 젊은 근로자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벤처기업의 실패와 같은 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그걸 ‘유쾌한 실패’로 여길 때 기업은 호기롭게 글로벌 시장을 휘어잡을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단순히 벤처에만 통하는 논리는 아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승승장구하는 기업이든, 살아남기에 급급한 기업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이와 관련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머스는 사람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합리를 주창했다. 그런 면에서 CEO의 글로벌화와 기술 역량을 높이는 첫걸음은 조금이라도 젊은 사고를 접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이 어쩌면 시장을 더 크게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토리에서 글로벌 시장까지, 젊음의 기발함이나 벤처의 도전정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 속에 길이 있을 수 있다. 이참에 부장이나 본부장, 이사로부터만 보고를 받는 관료 시스템을 과감히 털어내면 어떨까. 또다른 생존 동력으로 삼을 모닥불이 피어오를지도 모른다.
김기찬 중앙일보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산학협동)을 맡고 있다.